“아들한테 계속 침묵하면 아들이 방도 치우고, 게임도 안하고 그러나요? 내용을 읽어봐도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고민만 쌓여갑니다. 아들아(침묵) 게임(침묵) 그만하는게 (침묵) 좋겠어(침묵). 이러면 될까.”
아들에게 “벗어둔 옷은 옷걸이에 걸어둬라”, “게임 좀 그만해라”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는 내 경험을 소개하면서 말이 많으면 말에 힘이 떨어지니 말과 침묵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분량상 말 안 듣는 내 아들이 나의 침묵에는 말을 듣게 됐는지는 글에 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가 잔소리를 그친 뒤 아들은 어떻게 됐을까.
아들은 지난해 수능을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게임에 빠져 부모 말이라곤 듣지를 않았던 아들이다. 아들에 대해 자랑할 것이라곤 마마보이가 아니라는 것뿐이라고 지인들에게 말할 정도였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때 아들 손 뼈에 금이 갔다. 병원에서 진단 받은 뒤 몇번 더 병원에 다녀야 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냥 두면 붙는다고 병원에 안 가겠다고 했다.
소리를 지르고 등짝을 후려쳐 간신히 집 밖으로 끌고 나왔지만 아들은 병원을 가다 갑자기 “나 병원 안가”라고 말한 뒤 냅다 도주했다. 황당했다. 뼈가 잘 붙고 있는지 검진하자는데 병원은 왜 안가겠다는 것인지.
이런 일을 몇 년 겪으며 말을 많이 한다고 다른 사람이 내 말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서양 속담에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것이 있다. 아들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말로도, 완력으로도 아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는 없었다.
잔소리를 그치면 말을 들을까
부모가 잔소리를 그치면 아이는 긴장한다. ‘엄마가 왜 아무 말도 안 할까.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 하면서 잔소리보다 더한 것이 닥칠까 걱정스레 눈치를 본다. 그럴 때 아들은 내게 먼저 “조금만 더하고 게임 그만둘게”라고 했다.
이 수준에서 그만두는 아이도 있지만 내 아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잔소리를 꾹 참고 침묵을 유지하면 아들은 지칠 때까지 게임을 한 뒤 슬그머니 다가와 눈치를 보며 내가 좋아할 말을 늘어 놓았다. “게임도 실컷 했으니 이제 공부 좀 해야지” 따위의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그리 쉽게 바뀌는게 아니다. 그 후에도 아들은 또 게임을 하고 벗어놓은 옷과 음식 먹은 흔적으로 방을 쓰레기장처럼 만들었다. 침묵으로도 아이를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는 못했다.
그렇다면 잔소리보다 침묵이 더 나은 이유는 뭘까
첫째, 에너지가 절약된다.
말하는 데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데 아이와 말싸움을 그치면 속은 부글부글 끓을지언정 짜증 내고 화 내고 목소리 높이느라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둘째, 자녀와 최소한 괜찮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잔소리를 하면 아이와 싸우게 되고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침묵하면 관계가 나빠지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침묵이란 입을 다물고 눈을 부라리며 못 마땅하게 아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잔소리를 그만두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셋째, 부모 탓을 안 한다.
아들은 수능을 기대했던 것보다 못 봤다, 그 결과에 대해 아들은 나나 남편에게 전혀 짜증을 내거나 탓을 돌리지 않았다. 나나 남편이 무슨 말을 해도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아빠 생각엔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은 했지만 그 조언에 따르라고 잔소리하며 강요하진 않았다. 아들은 자기가 판단해 자기가 결정했으니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기에게 돌렸다.
넷째, 결국은 스스로 깨닫는다.
사람은 스스로 깨달아야 변한다. 회심해야 행동이 변하는데 이 회심은 누가 억지로 시킬 수 없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대개 회심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보다는 자신의 경험, 특히 아픈 경험을 통해 이뤄진다. 많은 부모들이 잔소리를 그치지 못하는 이유는 아픈 경험, 즉 고난 없이 아이가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해서다. 내가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너는 어려움을 겪지 말고 내 말대로 따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깨닫지 않은 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 게다가 평생 아이를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할 수도 없고 그 잔소리에 다 순종하는 아이가 건강한 것도 아니다. 잔소리를 끊으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침묵으로 바라보는게 힘들지만 아이가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서려면 이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침묵은 곧 인내다.
아이에 대한 침묵에도 방법이 있다
첫째,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인생의 방향을 잡아갈 수 있도록 조언과 권면을 해줘야 한다.
둘째,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일에 대해선 단호해야 한다.
절대 넘어선 안 되는 큰 울타리는 쳐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외에 방을 치우지 않거나 밤낮을 바꿔 생활하거나 공부를 안 하거나 하는 등의 습관 또는 생활태도는 잔소리하며 싸워 고치려 하지 않는다.
셋째, 아이를 믿는다.
언젠가 깨달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믿는 만큼 성장한다.
넷째, 사랑으로 인내한다.
아이가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모습을 사랑으로 참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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