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컬런 브라이언트는 1794년 11월 3일 매사추세츠 커밍턴(Cummington, Massachusetts) 근방의 한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피터 브라이언트(Peter Bryant)는 가난한 시골의사로 식민지개척자의 후예였고 어머니 사라 스넬(Sarah Snell)은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한 초기 청교도의 후손이었다. 어린 브라이언트는 가난 때문에 잘 못 먹어서 몸이 많이 허약했으나, 아버지로부터 희랍어글자를 배운 지 두 달 만에 희랍어 성서를 줄줄 읽을 정도로 특출한 아이였다.
브라이언트는 열여섯 살에 윌리엄스칼리지(Williams College)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도 넉넉지 않은데다 내심 예일(Yale) 대학교 에 들어가고픈 욕심에 2년 만에 학업을 그만둔다. 그러나 예일의 꿈은 무산되고, 대신 그는 매사추세츠의 워딩턴(Worthington)과 브리지워터(Bridgewater)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1815년 스물한 살 의 나이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리고 곧바로 커밍턴 근교에 있는 플레인필드(Plainfield)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십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서 출퇴근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한 편 물새에게 ("To a Waterfowl")는 그 시절, 1815년 12월 어느 날 퇴근길에 수평선 위로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를 보고 영감을 받 아 지은 작품이었다. 브라이언트는 플레인필드와 그레이트 배링턴 (Great Barrington)에서 10년 가까이 변호사로 일했으나, 이 직업 을 평생 혐오했다고 하며, 1821년 1월 11일 프랜시스 페어차일드 (Frances Fairchild)라는 여인과 결혼해서 반백년 가까운 세월을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윌리엄 브라이언트는 아주 어려서부터 시에 관심을 두고 아버지의 지도하에 많은 습작을 하였다. 1808년 열세 살 때 출간한 영국 신고전주의풍의 풍자시, 『금지령』(The Embargo)은 토머스 제 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다 분히 정치적인 시로, 금세 다 팔려 바로 개정판이 출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재능 있는 어린 시인의 등장에 대한 환호였겠 지만, 시인 브라이언트에게 유명세를 안긴 시도 열다섯 혹은 열 일곱 살에 썼다는 그의 대표작 죽음에 관하여 (“Thanatopsis”)였 다. 1817년 『북아메리카리뷰』(North American Revieν) 9월호에 발 표된 이 시 역시도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감수성과 시상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버지 피터 브라이언트가 아들의 책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원고를 자신의 자작시들과 함께 이 잡지사에 투고하였는데, 한 편집인이 당연히 어른의 작품이겠거니 판단 하고 저자를 피터 브라이언트로 표기해 인쇄하였다가 나중에 모두 폐기했다는 후문이다. 생사를 자연스런 흐름으로 수용하고 마 치 세상을 달관한 듯이 차분하게 시를 전개해가는 화자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 필시 열일곱 살 소년이 아니라, 일흔 노인의 경험이 배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리라. 어쨌거나, 브라이언트는 1821년 첫 『시집』(Poems) 을 내면서 시인으로서 세상에 공식 데뷔하였고, 1832년에 이 시집을 개정·증보해 출간한 두 번째 『시집』(Poems)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미국의 주요시인 중 한 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인물이 미국의 단편소설작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 1783-1859)이었다.
윌리엄 컬런 브라이언트는 흔히 ‘미국시의 아버지’로 통한다. 습작기에 영국 신고전주의풍의 풍자시도 쓰긴 했으나, 브라이언트 시의 백미는 자연을 예찬한 서정시로, 그를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시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 자연은 인간 혹은 문 명의 죄를 씻어주고 치료해주는 자애로운 힘의 원천이었다. 그는 평생을 자연과 친숙하게 지내면서 동식물들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연의 물상들을 아주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드루이드교도 같은 자연 숭배자였고, 대초원 ( The Prairies,1833)에서와 같이, 아메리카대륙의 광활한 자연에서 펼쳐져 왔고 또 펼쳐갈 미국의 역사를 연민과 희망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애국시인이었다.
1825년에 뉴욕으로 이사한 브라이언트는 그토록 혐오했던 변호사 일을 마침내 그만두고 새로운 세계로 뛰어든다. 그는 단명한 잡지 『뉴욕리뷰』(Neν York Review, 1825-26)의 공동편집자로 일했고, 1827년에 『뉴욕이브닝포스트』(Neν York Evening Post)의 부편집장으로 입사했다가 2년 만에 편집장 겸 공동소유주로 변신하여, 근 반세기(1828-78)를 이 일간지에 헌신하였다. 브라이언트는 본래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달변가로 알려져 곳곳에서 많은 연설청탁을 받았고, 여러 논설을 통해서 개방무역, 노동자의 권리, 언론의 자유, 노예제도폐지를 역설·옹호하고, 국제 저작권, 유급소방서, 염가우편보급 등을 제안하거나 지지했으며, 뉴욕 센트럴파크(Central Park),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과 뉴욕메디컬칼리지(New York Medical College)의 구상과 설립에도 크게 기여한 인물이었다. 또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투사로서, 노조결성에도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마틴 루터 킹(Martin huther K“ ing, Jr., 1929-68)이” 1957년 5월“ 17일 워싱턴디시에서 행한 연설("Give Us the Ballot")의 말미에 ”이 우주에는 윌리엄 컬런 브라이언트의 말을 정당화하는 무언가가 있다“ 고 운을 뗀 다음에, 그의 전장 (”Battle-Field",1837)에서 진리는 대지에 짓밟혀도 다시 솟으리라 (Truth crushed to earth will rise again.)라는 시구를 인용했는데, 이 흑인인권운동가 의 절절한 믿음과 희망의 표현에 양심적인 시인이자 언론이었던 브라이언트의 삶과 희망이 그대로 투영되지 않았나 싶다.
말년의 윌리엄 컬런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시보다는 주로 찬송가를 쓰면서 호머의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를 무운 시(Blank Verse) 형식으로 번역하는 일에 주력했으며, 이탈리아 애국자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 1805-72)의 넋을 기리는 센트럴파크행사에 참석했다가 뜻밖의 낙상사고를 당하여 끝내 몸을 회복하지 못하고 1878년 6월 12일에 저세상으로 떠났다.
죽음에 관하여
자연을 사랑해서 그녀의 가시적인 형상들과
영적으로 사귀는 사람에게, 자연은 갖가지
언어로 얘기한다. 그가 한결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자연에는 기쁨의 목소리, 아름다운 미소와
웅변술이 깃들어 있어, 자연은 슬그머니
그의 음울한 생각 속으로 들어가, 상냥히
치유하는 동정심으로 쓰린 상념을 없애준다
그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최후의 괴로운
시간에 대한 생각들이 마치 마름병처럼
그대의 정신을 엄습해서, 모진 고통과
수의와, 관 덮개와, 숨 막히는 어둠과,
그 좁은 집에 대한 슬픈 심상들이
그대를 전율케 하고, 가슴 아프게 할 때—
열린 하늘 아래로 나가, 자연의 가르침들에
귀를 기울여보라, 온 사방에서—대지와
그녀의 강과 바다, 대기의 심연으로부터—
고요한 목소리가 들려오리니.
그러나 불과 며칠이면, 그대에게는
만물을 보는 태양이 더 이상 아니 보이리라
그의 한결같은 행로에서. 그대의 창백한 몸이
숱한 눈물과 함께 눕힌 차가운 땅속에도,
대양의 품안에서도, 그대 모습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대를 길러준 대지가 장성한
그대 몸을 요구해 다시 흙으로 분해하리라,
그러면 낱낱의 인간흔적을 잃은 그대의
개별적인 존재를 내어주고, 그대는
떠나 원소들과 영원히 뒤섞이리라,
무감각한 바위의 형제, 무뚝뚝한 촌부가
보습으로 갈아엎고 짓밟는 둔감한
흙덩이의 형제가 되리라. 참나무가
뿌리를 널리 뻗어, 그대의 흙 몸을 꿰뚫으리라.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안식처에
그대 홀로 들지는 않으리라. 또 그대에게
그보다 멋진 잠자리는 없으리라. 그대는
태초세상의 원로들과 함께—대지의 권력자,
왕들과 함께—현자들, 선자들, 지난 시대들의
고운 형상들, 백발의 선지자들과 함께,
다 같이 거대한 한 무덤에 누우리라.
바위 뼈대의 태양만큼 오래된 산들—그 사이에서
생각에 잠긴 듯 고요히 뻗쳐 있는 계곡들,
장엄한 숲들—위풍당당하게 나아가는
강들과, 초원을 녹색으로 물들이며
졸졸 흘러가는 시내들과, 사방에 밀어닥치는
오래된 대양의 잿빛 우울한 황야도—
모두 기껏해야 그 거대한 인간무덤의
엄숙한 장식일 따름이다. 금빛 태양,
행성들, 하늘의 온갖 무수한 천체무리가
죽음의 슬픈 거처들을 비추고 있나니
고요히 흘러온 세월 내내. 지구를 밟는
만물은 그 품에 잠들어 있는 다수에
비하면 그저 한줌일 뿐이다.—아침의 날개를
달고, 바르카 황야를 뚫고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그 부단한 숲에서 길을 잃으리라
오리건이 굽이쳐,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만—거기에도 사자들이 있다.
그 쓸쓸한 황야들에도 수백만이, 세월의
첫 비행이 시작된 이래로, 저마다 몸을 뉘고
마지막 잠에 들었다—그 사자들이 그곳의 유일한 통치자.
그대도 그렇게 휴식에 들리라—산자들로부터
조용히 물러나, 그대가 떠난 것을 알아차리는
친구 한 명 없다한들 어떠랴? 숨 쉬는 만물이
그대의 숙명을 공유하리니. 그대가 가고 나면,
즐거운 이들은 웃고, 진지한 이들은 근심에 젖어
터벅터벅 걸으며, 다들 전과 다름없이 각자가
좋아하는 환영을 쫓아다니리라. 허나 이들도 모두
자신의 환희와 자신의 일을 놓아두고, 떠나와서
그대와 함께 잠자리에 들리라. 세월의 긴 행렬이
스르르 미끄러져 떠나가듯이, 사람의 자식들—
인생의 기운찬 봄에 접어든 청춘도, 세월의 충만한 힘을
만끽하기 시작한 사내도, 부인도 처녀도,
말 못하는 아기도, 잿빛 머리칼의 어른도—
하나둘 차례로 그대 곁으로 모여들리라,
다른 이들도 제 차례가 되면 그들을 뒤따라오리라.
그러니 살다가, 그대의 소환일이 다가와
저 신비로운 영토, 죽음의 고요한 홀에서
각자가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될 그곳으로
떠나는 무수한 여행행렬에 합류하는 날,
그대여, 한밤에 채찍 맞으며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는 채석장의 노예처럼 가지 말고, 확고한 신념으로
참고 견디며 기꺼운 마음으로 그대 무덤에 다가가라
마치 잠자리의 주름진 옷감으로 몸을
감싸고, 누워서 즐거운 꿈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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